내겐 너무나 가혹한 말레이시아

|
2008년 12월 22일(날짜와 게시되는 순서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를 졸업한지가 햇수로 3년이 되어간다 기분나쁜 사실을 떠올리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침대에 누운채로 졸업 후의 연도를 세어봤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그 시간들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아니, 사실 상 그것은 큰 시간이라면 상당히 큰 시간이다.
2006년에 졸업을 하긴 했지만 졸업식이 2월이기 때문에 사실 학교를 다닌 건 2005년까지다. 그러니까 공부를 마친 후 보내버린 시간이 이제 3년을 꽉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다들 알겠지만 한국에서는 졸업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입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워진다. 내 나름대로는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시도해 본다,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보낸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현듯 계산을 해보게 되니 너무나 많은 시간을 써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감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기분이 나만의 경험을 아닐지 모른다.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좀 더 어렸을 적에 30대를 넘어선 사람들이 했던 얘기중에 서른이 되었을 때의 공포감과 두려움 같은 것에 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니까....
엄밀히 따져보면 이것은 서른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라기 보다는 공부를 끝마친 후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다. 나는 아직 서른이 아니라 이제 만 28이며 나이에 대해서는 마인트 컨트롤과 나름의 철학으로 인해 크게 연연해 하지 않게 되었다. 
단지 우려하고 있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좀 더 머리속에서 싱싱할 때 밑바닥에서 고생하며 경력을 쌓아나갔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분야에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내 전공은 디자인 계통으로서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 자체가 트렌드에 따라 유동적이며(물론 10년전의 내용을 전통적?으로 쭉 이어가는 늙은 교수가 있는 학교들도 있다.) 신입직원을 뽑는 회사들 또한 그런 싱싱한 아이디어를 염두해 두고 큰맘먹고 신입을 뽑는 경우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같은 졸업한지는 오래되고 그렇다고 이렇다할 일관된 경력도 없는 사람은 별로 매력이 없어 보이지 않을까싶다. 그래서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어서어서 이 지긋지긋한 말레이시아를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지만 막상 한국에 가서 그런 편견아닌 편견과 싸우며 구직할 생각을 하니 앞이 조금 더 막막해졌다.


사실 한국 사회 만큼 사람을 뽑을 때 그 사람의 나이를 고려하는 사회는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몇번 겪어 보았지만 실력보다도 위에 있는 사람의 나이보다 많은 가 많지 않은가가 당락의 중요한 열쇠중의 하나로 작용하는 것이 한국 사회다. 왜냐하면 서로 대화를 하기 전에 누가 존대말을 하고 누가 반말을 해야할지 정해야 그 때 부터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사회가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실 소중한 우리의 문화라고 하고 넘어 갈 수도 있겠지만 한국 밖에 나와서 보니 별로 소중해 보이지 않으며 내 개인적인 편견으로는(웃음) 좀 많이 촌시럽기까지 하다. (참고:촌스럽다가 표준어입니다.) 그리고 '상하관계'가 커뮤니케이션의 전제 조건이 되는 문화가 창의성을 많이 저해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다가 Limkokwing 측에서 들어왔다고 하는 환불금의 액수는 당초 내가 생각해두었던 액수에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가 들어왔던 것이다. <등록했다가 취소하고 환불신청을 했던 학원과의 트러블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의 줄거리 전개상 안 읽으셔도 무방하나 읽기 원하시면 '더보기'를 클릭하십시오.>
막상 일이 이렇게 또! 꼬이고 보니 말레이시아에 정이 떨어지기 보다 기왕 이렇게 되면 비행기표 살 돈도 모자라게 되고 한국가자마자 또 급전 만든다고 추운 날씨에 알바뛰고 있을 생각하니 따뜻하고 난방비 걱정 안해도 되는 이 나라에서 일자리 잡아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


아무튼 난 최후의 몸부림으로 이곳 랭귀지 스쿨에 같이 다니던 말레이시아인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한 건축 디자인회사에 인터뷰를 하러 갈 생각이다.  그 동안 Contact을 시도했고 드디어 좀 전에 전화통화로 인터뷰 시간을 잡았다.
이 회사에 대해서 자세한 사항은 인터뷰 때 물어봐야 알겠지만 싱가포르에 기반을 두고 있는 International한 무대를 배경으로 활동하고 있는 회사라는 정도까지 알고 있다. 내일은 이력서를 다시 정리하고 프린트해서 내 소중한 포트폴리오와 함께 들고 가야한다.  그래도 막상 고군분투하며 살다 보니 나름 어떻게 살면 되겠다는 노하우들도 쌓여가고 한국의 절망적인 취업 상황까지 겹치면서 내 인생을 다시금 이곳 말레이시아에 배팅하게 만든다.  



And